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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kop 개편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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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는 21세기 파놉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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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혁신에 눈뜨고 있는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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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시장동향과 활용분야 확대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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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과연 필연적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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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시대 인공지능의 미래를 보여주다, IBM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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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에스프레소 머신, 베제라 BZ10 구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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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누아 망델브로 - 프랙탈을 창조한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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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사계의 아바타, 스탈린그라드 전투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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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워게임 관련 시사주간지 기고문

Periskop 개편 중입니다

Periskop가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둥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 중입니다. 이미 2012년에 이전 및 개장 작업에 들어간 바 있습니다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한 번 좌초된 점 아쉽게 생각합니다. 어쨌건 다시금 심기 일전하여 2014년 초부터 공사를 재개합니다. 언제 끝날 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가급적 올해 안에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 페이지를 보더라도 정식 재개장이 이뤄질 때까지 슬쩍 모른 척 넘어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안부 여쭈어 주시는 여러 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참고로 현재 개편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 Textcube → WordPress
    사이트를 전체적으로 시대의 대세(?)에 따라 워드프레스 기반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양한 매체(PC, 스마트폰, 태블릿)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테마들을 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 군사사 중심 → 시사, 과학, 경영 등 영역 확대
    아시다시피 Periskop는 제2차 세계대전사 전문 사이트를 표방하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밥벌이 하느라 이것저것 건드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사나 쓰는 글의 주제도 넓어졌습니다. 당초에는 그걸 다 별도의 블로그/사이트를 만들어 담아볼까 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너무 관리에 부담이 되고 대신 Periskop의 외연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담는 그릇은 크게 하되, 거북하다고 느끼실 분들을 위해 대문을 여러 가지로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기존 포럼 등 Old Contents의 박제화
    초창기 Periskop나 이후 활발히 운영되어왔던 포럼의 자료들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살릴까 고민했는데, 데이터는 일단 다 살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제가 포럼을 운영할 여력이 안 되니, 추가적인 글쓰기 기능은 막아놓고 일종의 archive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Periskop 홈지기
채승병 드림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는 21세기 파놉티콘

한경 Business 968호 (2014년 6월 16일자) '테크 트렌드' 연재물로 기고한 글이다. [☞ 기사 보기]

1950년대 들어 냉전이 심화되자 미-소 간에는 우주발사체(로켓), 인공위성을 필두로 이른바 우주경쟁(Space Race)이라 불리는 치열한 기술전쟁이 벌어졌다. 그 서막은 1950년 일단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1957년 7월부터 1958년 12월까지를 국제지구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으로 선포할 것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1955년 7월 29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는 이에 부응하여 국제지구관측년 기간 동안 지구를 관찰할 수 있는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겠다는 발표를 한다. 여기까지는 어찌 보면 단순한 과학 이벤트에 불과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불과 4일 후인 8월 2일, 소련이 자신들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겠다는 공개 도전장을 내밀면서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인공위성은 양국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미-소 양국은 우주경쟁의 서막이 오른 1955년 8월 이전부터 인공위성이 가지는 가치와 이로 인해 열릴 새로운 미래를 인식하고 있었다. 미 공군은 그제까지 정찰기가 적국 상공으로 날아가 사진을 찍어 보내듯이, 이제는 우주공간에 뜬 인공위성이 적국의 동향을 감시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미 그 해 3월에 신개념 정찰위성을 개발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소련도 1956년 ‘오브젝트 OD-1(Объект ОД-1)’이라는 이름의 비밀 프로젝트를 통해 정찰위성 개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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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혁신에 눈뜨고 있는 실리콘밸리

한경 Business 965호 (2014년 5월 26일자) '테크 트렌드' 연재물로 기고한 글이다. [☞ 기사 보기]

기상이변으로 얼어붙은 지구, 그 속에서 17년째 달리고 있는 열차, 그 속에서도 앞칸과 꼬리칸으로 나뉘어 고조되는 불평등과 이를 타파하려는 봉기…… 지난 해를 달구었던 봉준호 감독의 히트작, ‘설국열차’의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한국인이라면 이런 무거운 은유 속에서도 어디선가는 ‘와아~’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바로 ‘설국열차 양갱’으로 널리 알려진 ‘단백질 블록’ 부분에서 말이다. 외부로부터의 먹거리 조달이 불가능한 설국열차에서는 좋은 식재료는 앞칸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꼬리칸 사람들에게는 그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불분명한 최소한의 영양성분으로 만든 이 단백질 블록이 배급된다. 제아무리 양갱을 좋아하는 분이라도 이걸 십 수년째 씹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단번에 꼬리칸의 비애에 공감했을 것이다.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 (이미지 출처: 텐아시아)

그러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보면 이 양갱에도 그저 영화의 한 대목으로 넘기기에는 불편한 우리의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한국도 소득이 늘면서 건강한 삶과 안전하고 질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먹거리 조달은 이미 치열한 갈등의 씨앗이 된지 오래다. 세계의 곡창인 미국과 남미, 우크라이나 등지에는 가뭄과 홍수, 혹한이 번갈아 몰아치면서 벌써부터 공급 적신호가 켜졌다. 게다가 3년 만에 엘니뇨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각종 농산물 선물가격도 급등세이다. 1)

앞으로 기후급변동이 이어지고 지구촌의 주민들이 90억명을 향해 늘어나는 추세도 이어질 전망이니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살림살이가 좀 나은 국가와 계층이 좋은 먹거리를 차지하고, 가난한 국가와 계층은 ‘양갱’을 씹는 미래는 아주 가까운 내일의 모습일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녹색혁명을 이룩했던 이상의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생산성이 높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물과 양분 소비를 최적화한 새로운 농작물 재배법, 가축 사육법을 만드는 것이 물론 그 한 방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와 더불어 인간의 식재료 제조기술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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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빅데이터 시장동향과 활용분야 확대 흐름

서울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서울경제 5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 원문 보기]

1. 빅데이터 시장의 중·단기 동향전망

지난 2011년 이후 빅데이터(Big Data)는 ICT 업계의 기술담론을 넘어 산업의 중요한 경쟁우위 요소, 범 세계적인 현안의 솔루션으로 주목받으며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목을 끌어왔다. 2012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빅데이터 기술을 향후 국제개발의 가장 중요한 기술로 지목 1)

한 이래, 세계 주요 국가들은 빅데이터 관련 기술과 인력 확보, 시장 진흥을 ICT 정책의 주요 부분으로 채택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표방한 정부 3.0 비전에서도 국내외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행정 구현’을 하겠다는 것이 주요한 내용으로 들어가 있다.

이러한 빅데이터 유행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른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얼마나 빅데이터 관련 시장이 형성·확대되고, 관련 기업들의 수익이 증가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 동안에도 초기에 반짝 주목을 받고 투자가 집중되다가, 기대한 수익을 얻지 못하면 업계와 사회로부터 외면 받은 기술담론은 비일비재해왔다.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잠시 여러 사람을 미혹시킬 수 있어도, 머지않아 시장성에 대한 가혹한 검증의 시간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내 관심도 식어버리는 법이다. 이미 빅데이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왔던 측에서는 빅데이터는 말만 무성한 거품일 뿐이며,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는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해왔다. 설령 긍정적인 측에서도 빅데이터가 기존의 우수 활용기업, 즉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선도기업들을 제외하고 다른 다양한 기업들까지 고루 편익을 향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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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제1차 세계대전, 과연 필연적이었는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과학동아에서 기획한 특집 '인류는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2014년 2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잡지에는 '제1차 세계대전은 어이없이 일어났다: 복잡계 이론으로 본 전쟁의 시작'이란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 기사 보기]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중심도시 사라예보의 한 골목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세르비아계 민족주의 운동에 투신한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것이었다. 총격 직후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황태자 부부는 이내 절명하였다. 분노한 오스트리아는 사건의 배후로 의심되는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슬라브계 국가의 맏형 노릇을 하던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으며, 다시 게르만계의 맹주 독일이 러시아 및 러시아와 동맹 관계에 있던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세계사 교과서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라예보 사건’과, 이어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의 비화 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적인 설명에는 큰 맹점이 있다. 사라예보 암살사건은 6월 28일에 일어났다. 그런데 실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어 독일, 러시아, 프랑스 사이의 선전포고가 뒤따른 것은 무려 한 달이 지난 7월 28일~8월 1일의 일이었다. 도대체 그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과연 사라예보 사건이 세계대전이 발발한 결정적인 원인인 것일까? 또한 이 사건이 자그마치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것은 필연적이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당대 유럽을 엮고 있던 세 가지 네트워크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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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시대 인공지능의 미래를 보여주다, IBM 왓슨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
“네, 왕비님이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분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백설공주님이 왕비님보다 천 배는 아름답답니다.”

누구나 알겠지만 유명한 동화 ‘백설공주’의 한 대목이다. 사악한 계모 왕비가 매일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마법의 거울이 바로 대화의 상대였다.

그런데 이게 중세 북유럽이 아니라 어느 미래 대도시에서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진행될까? 21세기 계모 왕비는 존속살인교사의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십중팔구 자신의 마법거울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내 피부 트러블의 원인이 뭐니? 어느 성형 클리닉이 눈밑주름 제거 수술을 제일 잘 하니?”
“네 왕비님, 모낭충이 이상증식하고 있네요……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앞 예쁜나라 성형외과로 가시는게 어떨까요? 수요일 오후 3시로 예약해드릴까요?”

상세하고 정확한 답변에 흡족해진 왕비는 아마 오랫동안 해오지 않았던 질문을 날릴지도 모른다.

“거울아, 근데 이제껏 네 이름도 몰랐구나, 이름이 뭐에요? 1)

현아를 떠올리고 넣은 구절이다.

“네, IBM의 7세대 인공지능 의사결정 지원 웨어러블 미러, 왓슨 7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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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현아를 떠올리고 넣은 구절이다.

새 에스프레소 머신, 베제라 BZ10 구입기

Krups XP4050예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홈지기는 카푸치노, 카페라떼처럼 우유를 섞은 커피 음료보다 순수한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왔다. 그래서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시는 것이 오랜 꿈이기도 했다. 이런 욕구를 해갈한 첫 머신은 친한 친구가 결혼선물로 장만해준 크룹스(Krups)의 가정용 반자동머신 XP4050이었다. 여기에 한 쌍으로 역시 크룹스의 GVX1 그라인더를 갖춰 얼마 전까지 4년을 함께 해왔다. 이 조합만으로도 마냥 신기한 마음에 열심히 에스프레소를 뽑아 먹으며 감탄해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런데 작년 어느 순간부터인가 집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와 유명 업소들의 에스프레소가 점점 비교되기 시작했다. 우수한 바리스타와 머신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정말 혀와 코를 확 사로잡는 풍미의 샷을 맛볼 기회가 늘어났고, 왜 집에서 내리는 에스프레소는 이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생겨났다. 처음에야 아무렴 업소의 천 만원을 호가하는 장비들과 가정용 수십 만원 짜리 장비가 같을 수 있겠냐 하면서 넘어갔다. 하지만 슬슬 여기저기 눈팅이 늘다보니 뭔가 좀 더 욕심을 부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지름의 욕구가 솟구치게 되었다. 고민 끝에 이제는 대안이 무엇일까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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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누아 망델브로 - 프랙탈을 창조한 아웃사이더

네덜란드의 그래픽 아티스트 마우리츠 에스허르(Maurits C. Escher)의 작품 '동그라미 극한'을 보면 유한한 원 속에 상반된 패턴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 황홀한 패턴은 많은 분야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줬다. 에스허르는 캐나다 수학자 도널드 콕시터(Harold S. M. Coxeter)와 쌍곡면기하학의 신비에 관해 대화하다 아이디어를 얻어 이 그림을 만들었다. 복잡한 수식을 강렬한 이미지로 바꿔 수많은 아이디어를 낳은 사람은 에스허르만이 아니다. 프랙탈(fractal)이란 새로운 기하학을 탄생시키고 바로 얼마 전에 작고한 브누아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 1924~2010)도 그런 사람이다.

프랙탈은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하더라도 전체와 닮은 모습이 무한히 숨어 있는 모양을 의미한다. 눈꽃송이, 브로콜리, 고사리, 번개, 구름 등 자연 곳곳에 프랙탈의 형상이 숨어 있다. 자연 속에 이런 놀라운 패턴이 담겨 있고, 그것이 비교적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눈앞에 펼쳐진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벅찬 흥분을 안겨줬다.

재미있는 사실은 망델브로가 이런 업적을 남긴 과정에 프랙탈만큼이나 오밀조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놀라운 창조물을 보며 천재의 독특한 창의성을 찬미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그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이 응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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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사계의 아바타, 스탈린그라드 전투 3부작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독소전쟁 가운데서도 가장 잘 알려진 전투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첫 번째일 것이다. 실질적인 독소전의 승패가 1941년의 모스크바 공략전에서 끝장났다고 해도, 기갑덕후들에게 더욱 찐한 강철의 격돌을 보여준 1943년의 쿠르스크 전투가 더 확실한 승패의 종지부였다 해도 말이다. 스탈린그라드는 러시아부터 북아프리카까지 밀어닥친 1942년 추축 동맹군의 거센 파도가 극적으로 반전된 현장이다. 더군다나 소련 독재자의 이름이 찬란히(?) 아로새겨진 도시가 아닌가. 우연인지 필연인지도 모를 그 놀라움은, 스탈린의 영도력을 찬양하는 나팔소리와 함께 가슴 찡한 전설로 가공되어 전후에 이르기까지 사방팔방에 퍼져 나갔다.

홈지기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관련된 재미있는 기억들을 갖고 있다. 물론 몇몇 분들처럼 장대한 러시아 전장에 직접 찾아가서 가슴 벅찬 순간을 맞았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독소전쟁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겪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다. 본격적으로 독소전 자료 수집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느낀 것이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자료는 언제나 넉넉한 편이었다. 대부분 디테일이 흐리멍텅하기는 했어도 양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았다. 영어로 된 책은 제법 많았고, 다시금 휴먼카인즈 승리와 패배 시리즈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한글로 된 책마저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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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워게임 관련 시사주간지 기고문

요즘 직장 일에 더해 한 주 내내 출강할 일이 있어서 정신이 없습니다. 오전에는 업무 처리하고 오후에는 강의하고 저녁에는 다음 날 강의 준비하는 일정으로 도는데다, 감기까지 걸려서 블로그 글쓰기에 쓸 시간도 체력도 거의 없습니다. 설 연휴 이전까지는 이런 상태가 이어질 듯하니 양해 바랍니다. 대신에 제가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했던 워게임 관련한 내용으로 모 시사 주간지에 기고한 글을 하나 올려 놓고자 합니다. 주간지에 실린 글은 아래의 링크를 따라 가면 보실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기고문 원문에서 지면에 맞게 약간 수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는 수정 이전의 원문을 올립니다:

경영은 또 다른 전쟁 – 워게임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주간동아 2010년 2월 2일자 722호 48~51페이지: 게재문 링크]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고 생사를 좌우하며 존망을 가르는 길이니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나도 익숙한 손자병법의 맨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2천 5백 년 전에 남겨진 말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그 생생함은 여전하다. 그만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전쟁은 잔인하지만 너무도 가깝고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무력을 동원하여 한 국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자연스러운 정치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이 말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비즈니스는 나라의 큰일이고……”로 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적어도 ‘정상국가(normal state)’들 사이에서의 전쟁은 크게 잦아들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둘러싸고 기업들이 벌이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는 UAE의 원전 수주를 놓고 기업의 말단 사원부터 일국의 대통령까지 총출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국가 지도자로서 ‘군 통수권자’보다는 ‘국가경제의 CEO'라는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큼 시대적 요구도 변화했다. 그만큼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기업경영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이미 기업경영에서는 다방면에서 전쟁의 교훈을 활용해왔다. 우선 리더십이 대표적이다. CEO 리더십의 전범으로 거론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칭기즈 칸, 나폴레옹 등을 보면 다수가 전쟁 속에서 걸출한 업적을 일궈낸 인물들이다. 또한 이제는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되어버린 ‘전략(strategy)'도 원래는 군사용어였다. 특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조직화하고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전쟁의 전략적 접근법이 경영 깊숙이 뿌리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전쟁의 노하우를 경영에 응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워게임(War Game)이다. 워게임은 원래 여러 사람이 전쟁에 참여하는 아군과 적군의 부대, 외부요인 등을 나눠 맡아 벌이는 축소판 모의 전쟁이다. 한국군에서는 ‘전쟁연습’이라고 하는데, 매년 벌어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쟁연습이라고 해서 장병들이 총 들고 산야를 누비는 광경을 상상하면 안 된다. 여기서는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된 각급 부대 지휘관들이 지휘소 스크린에 펼쳐지는 북한의 가상 남침상황에 대응하여 병력을 이동시키고 교전을 명령한다. 이 결과는 워게임을 진행하는 중앙컴퓨터에서 처리되어 다시 각급 지휘소로 전송된다. 이렇게 적군과 아군이 의사결정과 대응행동을 반복하며 가상의 전쟁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워게임이 경영의 주목을 끌게 되었을까? 오늘날의 경영환경은 글로벌화, 빠른 기술진보, 신흥국의 부상 등의 한데 얽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IT, 자동차 산업에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지만, 반대로 조선 산업에는 10년을 유지한 선두를 내주는 시련이 되고 있다. 친환경 가치가 부각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며 내연기관 자동차의 명가 GM이 몰락하고 도요타가 막대한 재고로 골치를 썩고 있는 사이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비야디(比亚迪)자동차는 전기 자동차를 앞세우며 아예 경쟁의 판을 바꿀 기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전쟁에서도 일상적인 것이었다. 작년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적벽대전도 누가 애초부터 조조군의 패배를 예상했겠는가? 병력만 따지면 조조군은 약 15~25만 명, 상대편인 손권-유비 연합군은 3~5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세 등등하던 조조군은 보급난과 전염병에 시달렸다. 특히 거센 동남풍이 부는 상황을 간과하다가 황개(黃蓋)가 거짓 투항하는 척하며 벌인 결정적인 화공에 의해 참패하고 말았다. 돌발적인 환경변화와 그에 따른 경쟁자의 행동을 사전에 숙려하지 못한 결과였다.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환경변화의 가능성과 경쟁자의 다양한 반응을 미리 헤아려보는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천리(天理)를 읽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1980년대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가 미래 IT산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깨닫고, 미-일의 경쟁자들이 불황을 이유로 투자를 기피할 때 역발상의 투자확대로 성공한 과정이 그러했다. 경쟁자가 시장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논리를 고민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응용하는 자세는 경영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게임은 바로 이런 소양을 길러주는 도구로서 가치를 지닌다. 워게임이 처음 개발되어 적용된 것도 19세기 프로이센군이었다. 19세기 초 프로이센군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연패한 뒤에 대대적인 군제개혁에 나섰다. 특히 전문성이 떨어지는 왕족, 귀족 출신 장군들을 체계적으로 보좌하는 장교들과 전쟁수행조직의 필요성에 눈을 떴다. 그 결과 1807년 전쟁부(Kriegsdepartement)와 참모본부(Generalstab)가 설립되었고, 전문성을 갖춘 참모장교 육성을 위한 교육과정이 개발되었다. 1824년에 포병 소위였던 게오르그 하인리히 폰 라이스비츠(Georg Heinrich Rudolf von Reiswitz)가 아군, 적군, 판정관의 세 편으로 나누어 벌이는 일종의 보드게임인 “Kriegsspiel(전쟁놀이)”를 발명하자, 프로이센군 참모본부는 즉시 이를 널리 보급했다. 참모장교들은 워게임을 통해 실전에서의 돌발상황을 미리 체험해보면서 작전에 대한 이해와 대응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프로이센은 이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였음에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연파하고 독일 통일의 주역을 맡을 수 있었다.

워게임은 이후 각국 군대도 이를 벤치마킹해 도입했고, 20세기 후반에는 기업경쟁에도 응용되어 비즈니스 워게임(Business War Game)이란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워게임에서는 군사 워게임과 마찬가지로 경쟁관계에 있는 다양한 기업, 규제당국, 환경요인 등의 역할을 나눠맡게 된다. 물론 비즈니스에서는 지도에 표시되는 명확한 전선이 없는 대신에, 시장의 소비자 역할도 있다는 차이점도 있다.

작년 영국에서는 2004년에 영국재정청(FSA)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벌인 비즈니스 워게임이 화제가 되었다. 금융위기 이전이던 당시에 두 금융당국은 날로 확대되는 모기지 규모와 관련 금융파생상품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위험을 확인하고자 워게임을 실행해봤다. 각 당국자들이 팀을 나누어 개별 금융기관과 감독당국 역할을 맡고, 가상의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시나리오를 점검해본 것이다. 그 결과 노던록(Northern Rock) 등의 소매금융 중심 은행들이 먼저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뒤이어 HBOS 등 대형은행들로 이 위기가 파급되는 시나리오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사후조치를 게을리함으로써 위기 방지에는 실패했지만, 워게임의 유용성은 톡톡히 증명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외에도 비즈니스 워게임을 기업현장에 도입함으로써 얻어지는 긍정적인 효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로,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동 학습을 통해 임직원의 전략적 안목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기업에서 특정 업무에 매몰되다보면 보다 큰 시장의 경쟁구도에서 우리 기업의 위치를 조망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워게임에서는 자사의 전략적 입지와, 기존 전략체계의 강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만큼 조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량이 길러진다.

둘째로, 경영진의 집단사고를 방지하고 사고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많은 기업에서는 CEO의 의지가 완고할 때가 많다. 설사 반론이 나오더라도 CEO의 의지를 꺾을 만큼 명확한 근거를 대기가 어렵기 때문에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롤 체인지, 즉 역할변화가 좋은 자극제가 된다. 워게임에서는 CEO나 핵심 전략임원일수록 필히 경쟁사 역할을 맡아 자사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도록 맡겨본다. 당연히 워게임 속에서는 자사가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현실의 패배는 독약이지만 워게임의 패배는 보약이다. 패배 시나리오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숙의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소통과 고정관념 물갈이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의 전략적 대응체계를 단련시킬 수 있다. 전쟁에 나간 군대나 경쟁에 돌입한 기업 모두 시장과 경쟁자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전쟁과 비즈니스의 세계는 논리적, 합리적인 판단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초 계획이 틀어지기 일쑤이고, 막다른 골목에서도 경험과 직관, 통찰이 결합된 일격으로 상황이 급반전된다. 실무진이 머리 싸매고 작성해 올리는 통상적인 전략기획서와 대응매뉴얼에 이러한 가능성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워게임을 통해 CEO와 경영진들 모두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간접경험을 쌓아야만 효과적인 보완책이 마련될 수 있다.

우리는 기업경영의 통찰을 얻기 위해 기업 사례분석을 하고, 역사책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가 오늘날에 똑같이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과거의 패턴이 반복될 것이란 믿음이 기업을 망친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휴대폰 시장을 새로 개척한 모토롤라의 자신감은 1990년대 전 세계를 위성통신망으로 엮겠다는 이리듐 사업까지 뻗어갔다. 그러나 그 터무니없는 낙관의 결과는 1999년의 처참한 파산과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었다. 또한 소니는 1980년대 비디오 규격에서 폐쇄적인 ‘베타맥스’ 시스템을 고수하다 VHS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1990년 등장시킨 MiniDisc(MD)는 실패 교훈을 살려 상당한 개방 플랫폼 전략을 추구했지만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는 외면당하고 말았다. 변화된 환경과 새롭게 무장한 경쟁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전략적 판단은 이처럼 무망하다.

반면 워게임은 경영자에게 과거와 다른 현재 게임의 법칙을 가늠하고, 열린 미래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해 준다. 워게임에서 도출되는 여러 미래 시나리오는 기껏해야 하나만 맞다. 심지어 다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이 미래를 여는 힘이 된다. 이미 손자는 불확실성에 놓인 경영자의 숙명을 이렇게 예견한 바 있다.

“전쟁을 잘 하는 사람일지라도 적이 승리할 수 없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아군이 승리하게 할 수는 없다.”

전쟁의 오랜 역사와 워게임이 궁극적으로 말해주는 바도 이것이다. 필승이 아니라 최선을 노리는 겸허한 경영자의 자세가 진정한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워게임의 교훈을 살리지 못한 스위스항공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항공시장은 재편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세계적인 규제완화와 경쟁의 격화로 인해 항공사들은 제휴를 통한 세력 불리기에 나섰다. 우선 항공사들은 1990년부터 시작된 코드셰어를 통해 노선 중복을 막고 각사 승객들에게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어 1997년에는 영업, 관리, 서비스 등 전반으로 제휴를 확대한 최초의 항공동맹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가 결성되었다. 항공동맹은 각국의 반독점규제를 회피하면서도 통합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에 자극받아 1999년에는 또 다른 항공동맹 원월드(OneWorld)가 결성되었다. 또한 다른 대형 항공사들 중심으로 윙스(Wings)라는 항공동맹의 결성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격변기에 스위스항공(Swissair)은 전략적 기로에 직면했다. 스위스항공은 이러한 경쟁환경 변화에 맞서 오스트리아항공 등과 함께 퀄리플라이어(Qualiflyer)라는 독자적인 제휴선을 구축했다. 그리고 맥킨지의 조언을 따라 독자적인 '사냥꾼 전략(Hunter Strategy)'를 추진한다. 그 골자는 대형 항공동맹에 불리한 지분을 안고 들어가지 않고 퀄리플라이어를 기반으로 유럽의 군소 항공사 지분을 대거 인수하여 덩치를 키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스위스항공은 이 전략이 2000년대에도 제대로 먹힐 것인지 점검하기 위해 1999년 워게임을 시행한다.

워게임에는 스위스항공의 임원진 4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당시 주요 6개 항공사를 대표하는 팀에 배치되었다. 각각 에어프랑스, 델타, 원월드의 대표 영국항공(BA), 스타얼라이언스의 대표 루프트한자, 윙스의 대표 KLM, 스위스항공이었다. 여기에 워게임 통제팀이 구성되어 시장의 규제환경을 조정하고 각 팀의 과잉행동을 제지하는 이사회 역할을 수행했다. 추가로 시장팀은 각 경쟁자들의 행동에 따라 어느 쪽 점유율이 올라갈 것인지 판정하는 소비자 역할을 맡았다. 이들 8개 팀은 1999년부터 3년 단위의 3개 기간을 상정하고 워게임을 진행했다.

첫 번째 기간(1999~2002)에서 먼저 원월드 측이 스위스항공에 접근했다. 원월드와 퀄리플라이어가 통합하지는 않아도 느슨한 협력관계를 맺자는 제안이었다. 스위스항공은 이를 거절했다. 그밖에 대형 항공동맹들 사이에는 다양한 물밑접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기간(2002~2005)부터는 경쟁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통제팀은 항공요금이 평균 6% 하락하고, 아시아의 항공수요가 증가하고 아시아 항공사들이 항공동맹 가입 러시가 임박했다고 통보한다. 워게임에 참여하는 각 팀들은 이 시나리오에 적응할 적절한 행동을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스위스항공은 기존의 전략방향을 계속 밀어붙여 인수한 자회사들의 중복기능을 묶어 통합 서비스 회사들을 설립했다. 이번에도 원월드는 퀄리플라이어에게 더 매력적인 조건으로 동맹 참여를 제안했다. 이에 따른다면 원월드에 속한 대서양노선 및 아시아노선 운항사들과 손쉽게 제휴가 가능했다. 그러나 스위스항공은 원월드 내에서 영국항공과의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여 이 협상도 깨지고 말았다.

세 번째 기간(2005~2008)이 되자 통제팀은 더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발표했다. 반독점규제 완화로 대형 항공사간 합병이 승인된다는 것이었다. 이러자 기존 항공동맹 소속사들을 중심으로 M&A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영국항공은 아메리칸항공 및 US에어웨이와의 합병을 추진했다.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의 유나이티드항공은 델타항공과의 합병을 계속 진행시켰다. 이에 자극받은 윙스 측은 KLM과 노스웨스트항공의 합병을 추진했으며,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월드가 외톨이가 되어버린 에어프랑스를 동맹에 끌어들였다. 결국 가속화된 합종연횡 속에서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퀄리플라이어는 스타얼라이언스 측에 합류하고 만다.

이것은 워게임에서 도출된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이 워게임을 놓고 스위스항공의 CEO와 다수 임원진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CEO는 여전히 퀄리플라이어 확대전략이 유효하다고 확신했다. 퀄리플라이어의 덩치를 키우다보면 최악의 경우라도 더 유리한 조건으로 항공동맹 편입이 가능하리라 봤기 때문이다. 반면 임원진들은 규제완화와 시장변화에 따라 유럽 중심의 퀄리플라이어 입지가 빠르게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따라서 다수는 즉시 원월드와 제휴를 추진하는게 타당하다고 보았으나 끝내 CEO의 해석을 꺾지는 못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스위스항공은 이후로도 사냥꾼 전략을 계속 밀어붙였다. 그 사이 윙스 대신에 에어프랑스, 델타항공, 대한항공 등은 스카이팀(Skyteam)을 발족시켰고, 윙스의 주요 항공사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오늘날의 스타얼라이언스-스카이팀-원월드 3대 항공동맹 체제가 강화된 것이다. 그리고 워게임 후 불과 2년 만에 9/11 테러가 터지면서 항공수요 급감 충격으로 스위스항공은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확장을 위해 차입한 막대한 부채에 대해 주 채권은행인 UBS가 채무연장 합의를 거부했다. 결국 2002년 초, 스위스항공은 청산절차에 돌입해 분할매각되고 71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또한 그 후신인 스위스국제항공도 2005년에는 루프트한자에 매각되어, 의지와 무관하게 워게임 결과처럼 스타얼라이언스에 편입되고 만다.

여기서 보듯이 워게임이 정확한 미래를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보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워게임 과정을 관찰했다면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대형 항공동맹에의 가입이 불가피하다는 시사점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스위스항공이 1999년부터 대형 항공동맹과의 제휴를 앞서 추진했다면 무리한 차입을 억제하고 유리한 지분을 확보하여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다. 무릇 자사의 역량과 기존 전략을 과신하다보면 워게임에서 드러나는 미래의 흐름마저 눈을 감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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