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연설 뒷이야기의 진실

슈타인호프 님께서 처칠의 유명한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뎅케르크 철수에 대한 1940년 6월 4일 하원연설)의 뒷이야기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잡학사전』을 참고하신 것이라는데, 여기에 수록된 상황은 다음과 같이 떠도는 이야기이다.

처칠은 6월 4일 하원연설을 대국민 방송을 위해 BBC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다시 낭독했다. 이 연설의 백미는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를 읊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말하고, 윈스턴 처칠은 잠시 마이크를 손으로 덮은 채, "We’ll hit them over the heads with beer bottles, because that’s about all we’ve got! (그리고 우리들은 맥주병으로 그놈들의 대가리를 후려 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는 그것밖에 없으니까!)"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조로 말을 했다가 연설을 이어갔다. "We shall never surrender!……"

이 일화(및 그 변종)는 굉장히 유명한데, 책들을 읽다 보면 조금씩 다른 식으로 전해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버젼의 뒷이야기에는 정황상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위에도 밝혔듯이 원래 저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은 영국 하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영국 하원에서는, 오늘날 법원에서 녹음/녹화가 불가능하듯이 연설 등을 직접 녹음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를 국민에게 방송하려면 별도로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40년 5월 말에서 6월 초의 시기는 프랑스전역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영국의 국운이 백척간두에 놓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칠이 별도의 녹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형편이 못 되었다. 결국 저 연설은 BBC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가 일부만 발췌해서 소개했다. 즉, 전시의 영국 국민들은 저 6월 4일분 연설 내용을 처칠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기회가 없었다.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처칠의 육성 연설은 전후(1949년)에 Decca Records의 요청에 의해 녹음된 것이다. 1) 데이비드 어빙은 한 때 그의 저작(Churchill's War)에서 1940년 6월 4일 연설이 영국의 유명 배우 노먼 셸리(Norman Shelley)에 의해 대신 녹음되어 당일 저녁에 방송되었다는 설을 주장한 바 있다. 논란 끝에 셸리가 1942년 무렵에 성대모사로 이 연설을 재연하여 녹음했었다는 사실은 밝혀졌으나, 역시 공식적으로 방송된 적은 없음이 밝혀졌다. (아래는 어떤 사람이 10분 분량으로 편집한 전후 육성 녹음본)

결국 『잡학사전』에 소개된 뒷이야기는 몇 가지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게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 그건 또 아니다. 오늘날의 통설은 이렇다:

이는 하원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영국 정치권이 독일과의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연설 중간중간에 의원들의 호응이 상당했다. 게다가 영국 하원 자체가 수상의 연설을 조용히 듣는 문화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BBC에서 중계하는 하원 연설을 보면, 내용에 따라 의원들이 환호하다가, 장탄식하다가, 야유하다가 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아래는 현직 영국 총리인 고든 브라운과 보수당 당수인 데이빗 카머론이 한 판 설전(?)을 벌이는 모습)

당시 의원들은 보다 점잔을 빼긴 했어도 처칠의 연설 중간중간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막바지에 한창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부분이 나오자 역시 의원들의 열렬한 환호로 연설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때 처칠은 환호가 멎기를 기다리다가, 옆 자리에 앉은 동료 2) 이 동료(?)가 누군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전시 연립내각의 부수상을 지낸 애틀리를 거론하는 설이 있다. 아마 좌석배치로 보아 처칠 가까이에 있던 고위 정치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재밌어서 연설 뒤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뜨린 것 같다. 때문에 당시 주영 미국대사였던 죠셉 케네디(JFK의 아버지)나 캔터베리 성당 참사회장 휴렛 존슨이 듣고 전했다는 설까지 있다. 에게 슬쩍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And we'll fight them with the butt ends of broken beer bottles because that's bloody well all we've got.
(그리고 우린 그들과 깨진 맥주병 머리로 싸울 겁니다. 그게 분명 우리가 가진 전부니깐.)

『잡학사전』에 수록된 내용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이 내용이 운율도 맞고 보다 어감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정황 상으로도 하원에서 일부러 마이크를 가리고 연설문 일부를 누락했다는 것보다는, 환호 중간에 슬쩍 던진 위트였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현재로서는 처칠에 대한 대부분의 문헌들에 등장하는 버젼이기도 한 만큼, 이쪽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처칠의 탁월한 언변과 그 속에 묻어나는 위트는 어디 한 두 가지의 예화로 설명될 수준이 아니다. 혹시나 이런 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The Wicked Wit of Winston Churchill (윈스턴 처칠의 짓궂은 위트)』라는 책까지 나와 있으니 한 번 구해 읽어 보시기 바란다. 한국 정치인들이 왜 지루하게 보이고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홈지기 또한 이렇게 글에 위트가 없어서야…… (퍽퍽)

Notes

1.
  데이비드 어빙은 한 때 그의 저작(Churchill's War)에서 1940년 6월 4일 연설이 영국의 유명 배우 노먼 셸리(Norman Shelley)에 의해 대신 녹음되어 당일 저녁에 방송되었다는 설을 주장한 바 있다. 논란 끝에 셸리가 1942년 무렵에 성대모사로 이 연설을 재연하여 녹음했었다는 사실은 밝혀졌으나, 역시 공식적으로 방송된 적은 없음이 밝혀졌다.
2.
  이 동료(?)가 누군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전시 연립내각의 부수상을 지낸 애틀리를 거론하는 설이 있다. 아마 좌석배치로 보아 처칠 가까이에 있던 고위 정치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재밌어서 연설 뒤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뜨린 것 같다. 때문에 당시 주영 미국대사였던 죠셉 케네디(JFK의 아버지)나 캔터베리 성당 참사회장 휴렛 존슨이 듣고 전했다는 설까지 있다.

About the author

채승병

복잡성과학/데이터과학 연구자
군사사 연구는 덤.

21 Comments

Leave a comment
  • 우리나라야 아직 위트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요... 홈지기님의 글은 충분히 재미있으니 그다지 부담갖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 처칠이 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건설회사를 했다면 지금쯤 삼성은 2위일껍니다.

    아울러 MB께서 2차대전 당시 제3제국의 지도자였다면 『Mein Kampf』를 탈고한 다음에 자살은 안했을 듯 합니다.

  • 한국 정치인들도 말이라면 참 잘하는데 왜 그리 웃기는 재주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처칠경의 농담 실력이야 국민학교 시절부터 여러 종류의 위인전을 통해 접했지만 맥주병 이야기는 특히 깨는군요. 어째 염세적인 독일 농담같은 느낌입니다.

    • 다들 좀 위트를 존중해줘야 하는데, 이를 꼭 비틀어 해석해서 받아들이는게 정치인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장 홍준표 대표가 "암초"라는 표현을 썼다고 청와대가 발끈하는 모습이란……

  • 하긴 저도 읽으면서 아무도 듣지 못할 스튜디오 안에서 혼잣말로 했다면 기록이 어떻게 남았을까가 좀 의심스럽기는 했습니다. 의회에서의 연설중이었군요.^^;

    • 제가 들은 스튜디오 버젼은 옆에서 도와주는 방송 기술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지만, 이것도 결국 와전이 거듭된 결과였던거죠.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일화들이야 그저 그러려니 넘어갔을텐데, 처칠의 이야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cross-checking을 하니 뭔가 어긋나면 자꾸 눈에 밟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확인해 보니 소개해주신 책은 국내에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위트의 리더 윈스턴 처칠"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7월에 나왔더군요.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읽어봐야 할 듯 합니다^^

    • 헉, 그랬군요. 그러고 보면 처칠 관련 책은 이것저것 제법 많이 번역된 것 같습니다. 저도 서점 가서 어떻게 번역해놨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하루 포스팅 두 개라는 쿼터 규정 위반이지만......어제 24시간 동안 한 개도 안 했으니 딱 오늘만 어깁니다(...)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처칠의 맥주병 이야기를 읽으신 채승병님께서 그 이야기에 대한 보충 포스팅을 해주셨습니다. 덕택에 잡학사전의 그 이야기가 거짓은 아니지만 사실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김에, 제가 대충 기억하는 처칠의 일화 몇 가지만 포스팅을 해봤습니다.

    ...

  • 전 위트를 기르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괜히 재주(?)를 부려보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다보니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홈지기님 글은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위트를 기대하겠습니다. ^^

    아,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휴렛 존슨에 관한 하이퍼링크의 주소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앞의 죠셉 케네디의 링크와 동일하게 되어 있네요.

  • 저정도 감각이 있는 인물이니 노벨 문학상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ㅅ'

    노벨 문학상 하니 생각난 건데 사실 처칠은 노벨 문학상보다 '골초&병나발상'이 더 어울릴 인물인데 말이죠'ㅅ' 세상에는 아직 이런게 없으니 말이죠'ㅅ'

  • 그런걸로 보면.. 김종필 총재께서 조금은 있었던 것 같던대..
    "몽니를 부린다"던지..
    "숲은 아름답지만..깊고 어둡다" 던지
    이런 말들로 속내를 표현하던...

    하여간.. 다들 유머감각은 빵점이죠..

Leave a Reply

Copyright © 2013. Using SeaShell theme created by Meks. Powered by WordPress.